단체수건

30년간 교직에 몸담으면서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이 칭찬을 아꼈다는 점이다. 졸업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매년 명절 때마다 꼬박꼬박 안부 전화를 하는 제자, 늦은 시간에 불쑥 전화해서 뵙고 싶다고 말하는 제자, 스승의 날에 먼 산골까지 찾아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안기는 제자는 모두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너무 사소해서 내가 기억도 하지 못하는 내 한마디 칭찬, 배려, 도움을 학생들은 보석처럼 간직하더라. 나도 거의 50년 전 우리들의 별것 아닌 대답에 침이 마르도록 '참 잘했어요'라고 칭찬하던 초등학교 선생님의 표정, 말투까지 고스란히 기억하는 것을 보니 칭찬을 귀하게 여기고 성장 동력으로 삼는 것은 인간 본성인가보다.

<서평가 되는 법>(2025년 4월 출간)의 저자 김성신 선생과 나는 동년배이며 10년 이상 교류하며 지냈지만 나는 언제나 그에게서 배울 점을 발견하곤 했다. 우리는 책에서 배울 점을 발견하곤 하지만 감히 실천할 의지나 역량이 없음을 알고 좌절한다. 솔직히 김성신 선생을 뵐 때마다 드는 생각이 그렇다.

내가 배우고 싶은 그의 가장 큰 덕목은 사람이든 책이든 남이 보지 못하는 장점을 발견하여 성장 동력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서평가를 자청하는 사람은 많지만, 서평가를 발굴하는 서평가는 거의 없다. 서평가를 발굴하는 서평가는 간혹 있지만, 서평가를 저술가로 성장시키는 서평가는 내가 알기로 김성신 선생이 유일하다.

김성신 선생이 우리나라에서 서평을 가장 잘 쓰거나, 가장 많이 발표한다고 장담은 못하겠다. 그러나 이거 하나는 확신한다. 김성신 선생은 다른 전문 서평가가 주목하지 않는 작가와 책의 숨은 매력을 귀신같이 찾아 발굴하고 소개한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타인의 장점을 찾아내 칭찬하고, 책을 낸 출판사조차 인식하지 못한 책의 장점과 매력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가장 힘이 되는 글과 말로 전달하는 능력에 있어서 김성신 선생을 따라갈 사람이 거의 없다. 출판계가 하나의 학교라면 김성신 선생은 가장 탁월한 선생이다. 그는 가장 필요한 칭찬을 가장 적합하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신문사 서평 기사와 인터넷 서점 편집자 추천 목록을 보면 내가 하는 말이 이해될 것이다. 천편일률적이다. 그들의 눈에 띄는 책은 정해져 있다. 높은 확률로 유명 인사가 낸 유명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거나, 일반 독자가 근접하기 어려운 인문학 벽돌 책이다. 그도 저도 아니면 잘 팔릴 만한 책이거나.

평생을 함께할 책을 찾는다면 그냥 유명한 고전을 사면 될 것이지 미디어나 인터넷 서점에서 메인 화면에 띄워놓은 책을 살 필요가 없다. 책 정보를 얻기 위해서 여러 신문사의 서평을 읽을 필요도 없다. 그들이 다루는 책은 모두 같기 때문이다. 내가 김성신 선생의 서평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추천하고 말하는 책은 레거시 미디어와 마케팅과 접점이 없다는 것이다.

<서평가 되는 법>에는 책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거나 레거시 미디어 서평이 주목하지 않는 코미디언, 호텔 주방장, 탈북민, 평범한 대학생, 주부이면서 김성신 선생이 발굴하고 성장시킨 서평가와 그들의 책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래서 김성신 선생의 서평은 우리나라 출판계의 중요한 한 축이다. 다른 서평가가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공공재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명성과 사회적 위치에 자신을 슬쩍 올려놓고 싶은 본성이 있다. 출판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별반 다르지 않다. 책을 내는 저자는 유명 인사의 추천사를 받고 싶어 하고, 출판사는 가능한 유명한 저자의 책을 내고 싶어 한다. 서평가는 모두가 추앙하는 저자나 잘 나가는 책을 소개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김성신 선생은 인간의 본성을 이겨내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내고 성장시키는 사람이다. 그 길이 어떻게 빛나고, 탄탄대로이겠는가? <서평가 되는 법>은 그 어렵고 외로운 길을 걸으면서 겪은 사소할 수도 있지만 감동적이면서 재미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가슴과 겨드랑이에 털을 붙이는 분장에 단체수건 수치심을 느낀 여성 코미디언, 평생 요리만 하고 글을 써본 적이 없는 호텔 주방장, 탈북인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분위기를 안타까워하며 비판적 지식인이 되고 싶은 탈북인, 평범한 주부이지만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배우는 북콘서트 청중을 서평가로 성장시킨 이야기가 화려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재미가 없을 수도 없다. 광장시장에서 육회 번개를 하다가 서평가가 된 사람 이야기가 어떻게 재미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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